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폴리 백국 (문단 편집) === [[아사신]]에게 암살당하다 === 1150년, [[풀크]] 왕의 장남이자 차대 예루살렘 왕인 [[보두앵 3세]]가 트리폴리를 통과하여 폐허가 된 [[에데사 백국]]의 잔해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동방 제국의 황제 [[마누일 1세]]가 에데사 백국의 남은 영토를 구매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황제를 알현하러 직접 행차하는 중이었다. 당시 [[예루살렘 왕국]]은 심각한 내분에 휩쌓여 있었다. [[멜리장드]]는 아들 [[보두앵 3세]]를 통제 하에 두고 싶어했지만, 이미 19살이 된 보두앵은 왕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려고 고군분투중이었다. 멜리장드는 동생 호디에르나와 결혼한 레몽에게 보두앵의 행차를 돕지 말라고 압박을 넣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보두앵 왕도 자신과 함께 종군하여 세력 성장에 도움을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레몽은 보두앵 왕의 손을 들어주고, [[동로마 제국]]의 황제를 만나 투르베셀의 판매에 대해 의논하였다. 그렇게 새 왕의 지지를 받고 난 후인 1151년, [[파티마 왕조]]의 대함대가 트리폴리 항구 앞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수십 척의 트리폴리 배를 불태우고 수백명의 사람들을 납치, 학살한 후 항구를 공격했다. 1152년에는 이 지역의 상황을 잘 모르는 유럽에서 온 일군의 십자군 기사들이 트리폴리 백국과 우호관계인 베카 시의 이슬람 토후를 공격했다. 이 공격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이 때문에 누르 앗 딘이 군사를 움직여 트리폴리의 토르토사를 공격했다. 이들은 5월경 토르토사를 함략시키고 방위군까지 남겨놓은 채 돌아갔다. 그의 우방 [[보두앵 3세]]는 자기 휘하의 남작과 백작들을 집합시킨 기동대를 소집해 토르토사를 재탈환했다. 하지만 누르 앗 딘의 군대는 이곳의 요새를 파괴해 언제든 재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고 탈출했다. 이 요새를 재건할수도 없었고, 주둔군을 남길수도 없었던 레몽은 토착 [[그리스 정교회]] 주교에게 이 땅을 팔아버렸고, 이 주교는 다시 [[성전 기사단]]에게 토르토사를 매각했다. 옛날부터 토르토사를 눈독들이고 있던 성전 기사단원들은 이곳을 기사 수도회의 본당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대내외의 악재는 그를 힘들게 만들었고, 그는 자신의 아내 호디에르나와의 갈등이 잦아졌다. [[멜리장드]]는 동생과 레몽을 재결합시키기 위해 트리폴리 땅에서 3자회담을 주최했지만, 이들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았다. 결국 싸움이 거세지자, 멜리장드는 동생을 달래며 친정인 [[예루살렘]]으로 데리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레몽도 이를 수락하며 터덜 터덜 트리폴리 성을 향해 자신의 가신들을 데리고 떠났다. 하지만 이 때, 그의 이동경로를 예의주시하던 [[아사신|암살단]]이 그와 수하들에게 달려들었고, 그는 그대로 암살당했다. 그는 당시까지 암살단이 암살한 가장 높은 십자군 인물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